일주일이 조금 바빴다.
기왓장이 얹힌 지붕을 보면 마음이 안정될 것 같았다.
한옥 카페를 찾아보다가 기왓장 천지인 곳 하나가 생각났다.
주로 경복궁 정문으로 들어갔었는데 오늘은 오른쪽으로 돌아 국립현대미술관 맞은 편 문으로 입장했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니 소주방부터 나왔다. 인적이 없어 굉장히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엔 여기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굉장히 시끌시끌했을텐데, 사람들이 엄청 돌아다녔을텐데 하면서 거니는데, 겨울 바람에 시린 한적한 산책로가 된 것이 왠지 모르게 좀 서글펐다.
구경하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많아 말소리가 많이 났는데, 좀 혼자 걷는 기분을 내고 싶어 이어폰을 꼈다.
흘러나오는 노래가 Wake-up이라는 쇼미더머니10에 나온 노래였다.
이 장소에 어울리는 노래로 바꿀까 하다가, 내가 심신의 안정을 찾는 곳에서, 내가 늘상 좋아하던 노래랑 함께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반복재생으로 바꿨다.
궁궐 안에서 힙합을 듣다니, 아이러니하지만 또 그렇게 돌아다니니 궁궐 구경이 왠지 더 재밌고 걸음걸이에 흥이 붙어 있었다.

‘아미산’이라는 표지를 보고 ‘경복궁 안에 산이 있었나?’했는데 이곳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경전 뒤에 굴뚝을 예쁘게 만들어놓고, 단을 층층이 만들어 하나의 ‘산’이라고 생각하고, 돌로 오목한 웅덩이를 만들어 ‘호수’라 여겼다고 한다.
달 그림, 꽃 그림, 동물 그림, 나무 그림을 그려서 하나의 산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경복궁에 몇 번 와봤지만 여기까지 처음 들어와봐서 신기해서 좀 오래 머물렀다.
연기를 빼는 굴뚝 하나도 이렇게 예쁘게 만들고 상상력을 더했다.
사진으로는 안 찍었지만 자세히 보니 궁궐 벽들도 꽃을 그려넣고, 나비도 구워 붙이고 정말 세세한 작업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태까지는 그냥 스윽 보고 지나갔었건만, 이걸 만들면서 하나하나 모양을 만들고 구워내서 벽에 붙여냈을 생각을 하니 그냥 스윽 지나갈 수 없어 한참을 서 있었다.

건청궁 누마루에서 바라다보면 향원정이 보인다는 설명을 보고 올라가서 찍어봤다.
누마루는 출입금지라 계단을 최대한 끝까지 올라가서 찍어봤다.
누마루에 앉아 산 아래 물흐르는 걸 보고 앉아 있으면 걱정이 없었을 것 같은데, 건청궁 자체가 조선 후기에 고종과 명성황후가 지내던 곳이라 평온함보다는 걱정을 많이 하고 앉아 있었을 것 같다.
그래도 걱정 보다는 머리를 식히는 곳이었길 바란다.
그나저나 사진 수평 잡는 건 언제 되려나

향원정 앞에 있는 소나무
향원정을 더 예쁘게 보려고 가까이 갔는데, 멋지게 자란 소나무가 눈에 더 들어왔다.
진짜 멋지게 자랐다.

궁궐에 가면 이렇게 좁은 건물 사이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구도가 예뻐서 사진이 잘 찍히는 곳이라 누군가 같이 왔을 때 찍어주면 좋겠다.
뭔가 너른 들판보다는 이런 곳이 좀 더 끌린다.

조선 말기에 지어진 건물이라 청나라/중국풍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어우, 베이징 갔던 기억이 확 돌아오는 건물이었다.
경복궁의 제일 북쪽 끄트머리에 있었는데, 처음봤다.
건물 자체는 화려한데, 이 건물들이 지어진 시기의 역사를 알고 있으면서 바라보고 보고 있자니 기분이 참 묘했다.
매번 찬란한 조선의 흔적인 근정전이나 경회루만 보다가 저물어가던 조선의 흔적을 이제서야 본 느낌이랄까.
건물도 되게 구석에 숨어 있어서 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선 후기 역사 공부를 다시 해보고 싶었다.

한참 산책을 하다가 발도 시리고 몸도 으슬으슬 추워져서 밥집을 찾았다.
뜨끈한 국물을 한 사발 먹고 싶어 ‘활짝핀메밀’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온메밀우동 한 그릇을 국물까지 남김없이 해치웠더니 위장이 뜨뜻했다.

활짝핀 메밀을 찾아가던 길에 역사책방을 봤는데 괜찮아보여서 밥먹고 와야지! 하고 와봤다.
너무 책이 많은 서점들과 달리 재미있어 보이는 책들이 엄선되어 있었다.
경복궁을 보다가 조선 후기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런가 조선/일본 이런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면 관심이 자꾸 갔다.
관련된 책들이 재미있어 보이는 게 너무 많아서 다 살 뻔했지만 일단 책은 산다고 머리에 들어오는 게 아니니 욕심을 버리고 한 권만 샀다.
다락에 가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책장을 슥슥 넘겼다.

다락이 이것보다 분위기가 좋은데 사진이 진짜 안 나왔다.

낮에 해가 중천일 때 나갔는데, 노을이 질 때가 되어서야 산책이 끝났다.
경복궁 산책도 하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하루종일 행복했다.
뜨끈한 물에 샤워 한 판 하고 좋아하는 와인에 하몽, 치즈까지 먹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훅 생겼다.
여유를 찾을 땐 주로 산, 강을 찾아다녔었는데 이렇게 도심 한가운데 보존되어 있는 옛 흔적들을 찾는 것도 위로가 된다.
끝.
월요일을 행복하게 맞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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