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주 중 아프리카, 남아메리카를 제외한 나머지에는 그래도 한 번씩 발을 담갔다 빼본 여행러인 나는 여태 한 번도 휴양지로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프로 탐험러까지는 아니지만 세상 호기심이 많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휴양지가 썩 매력있는 선택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혼 여행조차 이탈리아 배낭 여행을 갔던 나는 피곤한 상태에서의 여정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몸소 깨달으며(그래도 재미있긴 무지 재미있었다.) ’휴식이 필요할 땐 휴양 여행도 해봄직하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회사 사정으로 올해 6월 말이 되어서야 겨우 휴가를 처음 썼는데, 정말이지 여행을 가더라도 휴양 여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다. 지칠대로 지쳐 업무에서도 퍼포먼스가 나지 않는, 맨정신이 아닌 이때 배낭 여행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남편의 전역을 기념하여 떠나기로 한 여행의 행선지는 그리하여 나트랑이 되었다. 선택 기준은 두 가지였다. 1) 비행 시간이 6시간이 넘지 않을 것 2)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
연말 다른 직원들의 휴가를 피해 12월 둘째주 나트랑 여행을 기획하며 걱정도 좀 많았다. 우기라는데 비가 많이 오면 어떡하나, 어디 못 다니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2) 돌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조건에는 사실 비가 와도 호텔 안에서 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깔려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나트랑행 비행기를 끊고 말았다.
나트랑에 도착했을 때에는 새벽 시간이었고, 그다지 덥지도 않았다. 그랩을 잡아타려던 우리 부부에게 택시 기사가 접근하였고, 카드 밖에 없다고 하던 우리 부부에게 카드로도 3만동 정도(한화 1500원) 싸게 해주겠다는 그의 말을 반쯤 믿으며 택시를 탔다. 택시는 흥정가의 친구가 몰았다. 남편에게 ’그런데 이 사람들 우리가 내릴 때 추가 요금을 달라고 할 수도 있어. 후기가 다들 그렇더라.’라고 얘기해줬더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호언장담을 했다. 무슨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봐야 3천원 안쪽이니 타자 그래, 하고 택시를 탔다. 밤공기를 가르며 도착한 호텔 앞. 여지없이 기사는 추가요금을 요구했다. 현금이 아니라 카드라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이럴 줄 알았다. 더 주고 내려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은 생각이 달랐나보다. “놉, 당신 친구가 카드로 해도 할인가로 해준다고 했다.” 택시에서 안 내리고 강하게 어필하자 택시 기사도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친구가 잘못 알려준 것 같다. 할인가대로 받겠다.” 남편에게 그냥 1500원인데 주지, 그러니까 이건 그들과 손님 사이의 약속인데 매번 어겨가며 돈을 주면 안 된다고, 꼭 할인가대로 받아야만한다고 하였다. 맞는 말이긴 하지, 내가 그런 용기가 부족할 뿐.
그렇게 호텔에 무사 도착한 우리는 배가 너무 고파 새벽 2시가 다 되었음에도 음식을 파밍하러 밖에 나갔다. 번쩍번쩍한 클럽 불빛 외 문 연 식당은 근처에서 찾기가 무척 어려웠다. 호텔 직원은 룸서비스를 추천하였으나 첫날을 그렇게 보내긴 싫었던 우리는 한 15분쯤 걸어 불이 다 꺼진 거리 한 켠에 밝게 빛나는 식당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해산물 레스토랑이었는데, 기내식도 못 먹은 우리는 일단 밥부터 챙겼다. 볶음면에 감자튀김, 돼지고기튀김이었다.


양파는 요리 잼병인 내가 썰어도 이거보단 작게 썰 것 같이 뭉텡뭉텡 썰어놨지만 해산물 왕국 답게 넘쳐흐르는 갑오징어와 새우, 그리고 간이 잘 된 면을 먹으면서 이 정도면 낫 배드, 하며 배를 채웠다. 돼지고기는 향신료를 뭘 썼는지 약간 신맛이 났는데, 나는 고기냄새가 좀 나서 많이는 못 먹었고 남편은 다 먹었다. 감튀를 먹는데 케찹이 약간 매운 맛이어서 신기했는데, 나중에 보니 이 동네는 케찹을 주면 꼭 두 개를 주고, 그 중 하나는 매운 케찹이었다.
맥주를 한 잔 하며 마무리를 하고 싶었으나 한국에서 달고 온 감기가 나을 생각이 없어 콜라만 연거푸 마셨다. 따뜻한 나라에 와서 감기가 좀 싹 나아가면 좋겠는데 생각했으나 그 정도로 따뜻하진 않았다.
1일차는 저렇게 일단 마무리를 하고, 4시쯤 잠에 들었다. 늦게 일어나면 조식은 제끼자는 다짐이 우습게 나는 8시에 잠에서 깼다. 시차가 고작 2시간인데 이게 이렇게 적응이 안 됐다. 자는 남편에게 나는 조찬을 하러 가겠다 했더니 본인도 가보겠다하여 조식 뷔페를 즐기러 갔다. 여느 조식 뷔페가 그렇듯 크게 특별할 건 없었고, 쌀국수와 반미가 있어 그것을 좀 먹었다. 감기걸린 나에게 국물이 뜨끈하니 너무 좋았고, 국물만 더 받아와서 한 사발 더 했다. 한층 몸이 개운했다.
밥을 다 먹고 신발부터 사야겠다는 생각에 시내로 향했다. 환전을 위해 김청에 갔고, 300달러 바꾸는 데에 8196000이었으니 100달러당 2732000로 쳐줬다. 바꾸자마자 맞은편 짭샵 간판이 눈에 들어왔고, 처음 간 가게는 옷을 만지자마자 천이 별로라 나와버렸다. 두 번째 들어간 준미샵이라는 가게에서 티셔츠를 몇 개 만져보고 여기에서 뭔가를 사야만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가격 대비 옷의 품질이 좋았고, 남편은 신발도 편하다며 하나 장만했다. 여기에서 집에서 가볍게 입을 티셔츠도 몇 개 사서 가족들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원래는 크록스를 사려 하였으나 옷 가게에서 시간을 많이 쓴 우리는 내가 미리 예약해놓은 마사지 시간 때문에 호텔로 일단 후퇴했다.
급히 호텔 내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종류가 되게 많았는데 일단 기본부터 해보자 싶어 베트남 마사지를 받았다. 옷을 안 입고 하는 건 처음이라 좀 당황스러웠는데 오일로 온몸을 문지르니 힐링이 쫙쫙 되는 게 아주 좋았다. 쪼금 더 세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말은 못했다. 마사지사가 이미 있는 힘껏 하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냥 다음 번엔 세게 해달라 해야겠다 생각만 했다. 몰랐는데 나오면서 벽면을 보니 ‘팁은 사랑입니다.’라고 적혀있었다. 흠, 베트남에 팁 문화가 있었던가, 나 그래도 베트남에서 여행 온 세 번째 지역인데 팁은 처음 듣는데, 그새 바뀐 건가 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마사지 쪽에서만 차츰 생기는 문화라고 한다. 시내 샵에서 받은 사람들 중에서는 팁을 꼭 내야했다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는 호텔에서 좀 더 비싸게 받은 거라 굳이? 싶기도 하고 가지고 간 현금도 없던 터라 그냥 넘어갔다.
마사지를 마치고 오후에 뭐하지, 하다가 점심으로 랍스터를 먹으러 가보자고 했다. 추천받은 해변가 떠이66에 가서 랍스터갈릭버터구이랑 가리비치즈구이, 모닝글로리를 시켜 한 끼 멋지게 해결했다. 나는 해산물을 잘먹는 터라 잘 못 느꼈는데 해산물을 잘 못먹는 남편에겐 살짝 비렸다고 했다. 그래도 못 먹을 정도는 아니고 약간이라고 하여 곧잘 먹긴 했다.



랍스터는 물론 맛있었고, 생각보다 가리비구이의 양념이 맛있어서 행복해하며 먹었다. 콘치즈 소스에 버무려놓은 맛이었는데 가리비가 관자도 크고 맛있었다.
음료까지 해서 토탈 131만동 정도 나왔다.
다 먹고 아까 못산 크록스를 사러 가자며 발걸음을 옮기던 와중에 카페 하나를 발견했다. 작은 개인 카페였는데 코코넛 아이스 블렌디드 커피를 사마셨다. 한국 돈으로 2천원 정도였는데 오, 맛있었다.


하나씩 먹으면서 10분 좀 넘게 걸었나, 시내에 도착했다. 크록스로 유명하다는 악어 크록스에 갔는데, 원하는 색상과 사이즈가 없어서 가면서 봤던 다른 가게들에 가봤다. 연보라색 맘에 드는 크록스가 있어서 겟하고, 남편도 하나 장만했다. 두 개 해서 40만동 주고 아빠 털달린 크록스도 하나 사가지고 양손 무겁게 쇼핑을 마치고 나니 해가 져버렸다.
남편은 여행의 목적이 하나였다. 글랜알라키를 사가는 것이었다. 그게 한국 가면 비싼데 베트남에서는 싸다고, 꼭 사야한다고 해서 와인셀러로 향했다. 베트남 사람들이 퇴근하고 저녁 먹는 동네로 추정되는 골목을 지나 한참 가다보니 와인 셀러가 있었다. 와인을 적정 온도에서 보관해야하다 보니 실내 온도가 16도였고 직원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15년 시음도 돼서 먹어보더니 한 병을 겟했다. 한국에 가져갈 거라고 하니 포장도 진짜 꼼꼼하게 해주고, 호텔에서 카톡으로 주문하면 가져다준다고도 하였다. 고민하더니 결국 다음 날 카톡으로 한정판 하나 더 사신 남편. 이 분은 여기에서 여행이 끝났다. 그 뒤로는 모든 것에 오케이, 행복과 만족의 표정만 보여줬다.
돌아오는 길에 롯데마트에 들러서 귀국 전에 뭐 사갈만 한 게 있나 살펴보고 내려왔는데 사람들이 치킨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Texas 치킨과 KFC가 붙어있었는데 사람들이 텍사스 치킨에만 있어서 KFC를 흘끗 보니 9:30 마감 시간이었다. 잘 모르긴 하지만 사람들이 먹는 걸 스윽 보니 치킨의 자태가 예사롭지 않아서 숙소로 포장해가기로 했다. 치킨 네 조각과 밥+치킨허벅다리 조합이었다. 내가 감기로 입맛을 잃은 터라 땡기는 게 없어서 남편 최애 치킨으로 저녁 메뉴를 정한 건데,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였다. 잃은 입맛으로도 맛있음이 느껴질 정도로 닭을 잘 튀겼다. 염지도 잘됐고 튀김도 바삭하고. 덕분에 몸보신 잘하고 자서 기침도 안 하고 그 다음날 9시까지인가 쭉 잤다. 역시 닭은 보양식이다.

정말 푸우우우우우우욱 자고 일어난 셋째날, 늦은 조식을 먹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전날 받은 마사지가 약하단 생각이 들어 타이 마시지를 받기로 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세기의 마사지가 나왔다. 누르고 꺾고 밀고 뭉친 어깨와 다리 근육이 쫙쫙 녹았다. 첫날 90분을 했더니 남편이 할 게 좀 없어보이고 여행 시간이 애매해지는 것 같아서 60분만 했는데, 90분 했으면 근육이 다 사라져버릴 뻔했다.
마사지를 끝내고 올라가니 우리의 남편은 그동안 욕조에 물을 받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목욕을 한바탕 하셨단다. 더우니까 콜라도 한 잔 들이키면서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걸 보니 같이 개운했다.
우리의 점심은 퍼 홍의 돌쌀국수였다. 쌀국수 재료를 접시에 담아 돌솥과 함께 내어주는데, 재료를 돌솥에 부어 샤브샤브처럼 익혀먹는 쌀국수다. 돌솥이 천천히 식어서 다 먹을 때까지 따뜻하다. 아니, 뜨겁다. 감기 때문에 고생하던 나였는데 쌀국수를 먹으면서 땀을 거의 삼계탕을 먹을 때만큼 흘렸더니 몸이 한결 나았다. 결국 입고 갔던 가디건을 벗고 민소매 차림으로 가게를 나왔다.

한 사발 뚝딱 하고 어디를 갈까 또 고민을 좀 했다. 걸어서 20분 거리에 롱선사가 있었는데, 둘다 불자는 아닌지라 글쎄 가야하나 하다가 그냥 시내 한 바퀴 산책이나 해보기로 했다. 돌아다니다보니 스타벅스 쇼핑백을 팔길래 스벅처돌이 내 동생 생각이 나서 하나 사고, 근처에 진짜 감성 충만해보이는 카페가 있었는데 발이 저절로 입장을 하고 있었다.





나트랑이 생각보다 오토바이 매연이 심해서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는데 그 속에서 나무 풀숲 속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는, 그러면서도 커피 내리는 곳은 세련된 카페였다. 인테리어도 자세히 보면 바닥 시멘트 사이사이 조개와 고둥을 박아놓고, 등갓도 조개를 붙여 만들어놓은 특색있는 카페였다. 초코 아이스 블렌드 커피와 코코넛 아이스 블렌드 커피를 시켰는데 다른 카페보다 가격은 좀 있는 편이었느나 그래봐야 한국 돈으로 3천원 정도였다. 서울이었으면 이 정도 감성이면 한 6-7천원 받았을텐데. 만족스러운 카페였다. 한참 쉬다가 나가서 걷다 보니 스티커사진 샵이 있었다. 이 동네에도 이게 있네, 하면서 남편이랑 찍으러 갔는데 항공샷으로 찍는 곳이었다. 고개 꺾느라 죽을 뻔했다. 웃긴 사진 몇 장 건지고 깔깔대다가 가방이랑 옷 좀 더 사고 나오는데 비가 슬금슬금 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부슬비가 오다 말다 해서 불안했는데 비가 좀 많이 왔다. 그치면 갈까 하다가 안 그칠 거 같아서 방수되는 종이가방을 머리에 쓰고 일단 호텔로 갔다. 급하게 걸으면서 나트랑 야시장도 지나갔는데, 막 엄청 화려한데 살 건 별로 없어보이긴 했다. 다니다보면 아는데, 파는 물건이 거의 똑같다. 일단 호텔로 들어와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는데 좀처럼 그칠 생각이 없었다. 놀다보니 그친 거 같아서 하바나호텔 옥상의 스카이라이트 라운지에 가보자고 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이라 그냥 꼭대기로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1층에서 입장권을 사야하는데 남자만 냈다. 약간 클럽 같은 느낌인가보다. 투숙객은 10프로 할인해주는데 남편만 내면 됐다. 이게 뭐냐며 큭큭댔는데 올라가니 남편은 음료가 무료고 나는 온전히 한 잔을 사야했다. 입장료보다 음료가 더 비쌌다. 이게 뭐람, 결국은 여자가 더 비싸네? 하다가 아 어차피 여자가 내는 게 아닌가? 참나 하며 껄껄댔다. 우리가 분명 비 그친 걸 보고 왔는데 올라가니 비가 아주 세상 끝날 것처럼 줄줄줄 내렸다. 야경을 못 보는 건가 하면서 음료를 홀짝대고 있으니 비가 잠깐 그쳤다. 놓칠 수 없어 호다닥 나가서 좌우 야경을 보니 참 예쁘긴 했다. 왼쪽으로는 밤바다 파도가 찰싹대고 오른쪽으로는 나트랑 야경이 펼쳐진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호치민 옥상 바에서 본 야경도 예뻤는데, 바다가 있으니 느낌이 색달랐다.

비가 자꾸 와서 더 즐기진 못하고 내려왔다. 슬슬 배가 고파져 뭘 먹을까, 베트남 음식 말고 딴 거 없나 생각하던 와중에 스테이크집이 눈에 들어왔다. 베트남 음식은 반쎄오 말고는 먹고 싶었던 걸 얼추 먹은 거 같아서 베트남에서 하는 스테이크는 어떤가, 생맥주는 어떻게 주나 싶어 가봤다. 한화로 스테이크 3만원, 오징어튀김 만원이면 충분하고 올드패션드 칵테일이 8천원, 맥주가 5천원 좀 안 됐다. 스테이크는 왠지 이 친구들이 고기를 좀 완전 익혀먹는 스타일인 듯해서 미디움레어를 시켜도 미디움웰던쯤 나오지 않을까 싶어 미디움레어를 시켰는데 예상 적중이었다. 딱 먹기 좋게 익어 나왔다. 시즈닝이 좀 매콤하니 베트남 사람들 입맛에 맞는 소스였다. 소스도 블랙 페퍼로 시켰나, 매운 걸로 시켜서 좀 자극적이게 먹었다. 오징어튀김이 대박이었다. 해산물 잘 나는 나라에서 베트남식으로 튀기고 야채를 버무려주는데 이게 맥주가 솔솔 들어가게 만드는 킥이었다. 맥주는 IPA를 시켰는데 베트남이 좀 라거 스타일을 좋아해서 그런가 IPA가 막 진하진 않았다.


다 먹고 남편이랑 도란도란 얘기도 하고 산책도 하다 잠에 들었다.
먹고 노는 여행에 바다도 끼고 있어 정말 아쉬울 게 없는 행복하기만 한 여행 같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오토바이 매연과 지저분함이었다. 조명들도 초록 빨강 등이 섞여 번쩍이는데 되게 밝았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보도 블럭을 다 정리해버리고 싶었다. 사람이 보도에서 걷는 것보다 도로가 더 편하면 이게 지금 보도인가 도로인가. 나는 내 집도 엉망이면서 밖에 나가면 꼭 흐트러진 걸 정리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참나, 아무튼 거리가 조금 더 정리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트랑의 혼란스러움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거겠지.
4일차는 잠을 너무 깊이 자서 조식 시간이 지나서 일어났다. 드디어. 비가 좀 그쳤다. 아점으로 반미를 하나 사먹고 바닷가를 좀 거닐어보자 하여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하바나 앞 바다의 파도는 정말 거세게 친다. 바람도 많이 불어서 카이트 서핑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바닷가 물에 첨벙첨벙하다 숙소로 돌아가 목욕을 한바탕 뜨끈하게 때렸다. 바다를 보면서 콜라를 마시며 하는 목욕이 꿀맛이었다.


다 먹고 뭐할까 하다가 나트랑 대성당을 가보자 했다. 이런 대혼돈의 도가니 속에 성당이 있다고? 하면서 걷다걷다보니 진짜 베트남 쪼매니 건물 사이에 큰 대성당이 하나 있었다.

세상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듯하게 서있는 성당이 신기했다.
바로 옆에 졸리비가 있어서 한 번 가봤는데 그레이비소스도 없고 치킨도 텍사스 치킨이 더 나았지만 그래도 해외 첫 졸리비이고 맛도 나쁘진 않았다.


베트남와서 치킨에 밥먹는 게 맛있는 걸 깨달아버려서 계속 이걸 시켜먹었다. 쌀이 좀 날려서 그런가 기름진 치킨이랑 잘 어울렸다.
소화시킬 겸 담시장까지 걸어갔다. 시내에서 한 20분 걸으니 문닫기 직전의 담시장이 나왔다. 부랴부랴 들어가서 산 물건들 가져갈 캐리어도 하나 장만하고 티셔츠랑 바지 같은 걸 좀 샀다. 시내보다 한 2만동씩 더 쌌다. 시내도 여기서 물건을 떼다가 가게에서 파는 거라고 언뜻 봤는데, 그래서 그런가 더 쌌다. 하지만 여기서도 깎으면 깎아진다. 넉살 좋은 남편이 깎아달라 외쳐서 매우 싸게 물건을 건졌다.
돌아다니다 숙소로 가서 쉬다가 뭐 먹지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짜오마오2라는 해산물 식당을 찾아냈다. 떠이66 말고 다른 해산물 식당도 가보고 싶다고 하여 찾은 이 곳은 맛있는 녀석들이 다녀간 곳이라 그런가 베트남 요리와 더불어 한국식 짬뽕라면도 팔고 있었다. 오기 전부터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크레이피쉬 회와 맛있어보이는 코끼리조개볶음과 짬뽕라면을 시켰다. 해산물을 시키면 수조 앞에서 직접 고를 수 있는데, 다른 가게들과 달리 무게를 잴 때 바구니 무게를 빼줬다. 100그램당 189000이었나, 했는데 크레이피쉬 회가 너무 달고 맛있었다. 감동받아서 울 뻔했다. 다 먹고 나면 머리와 다리는 쪄준다. 깨먹기 좋게 손질도 해주는데, 남편이 이런 거 까는 걸 재미있어해서 열심히 까면 나는 주워먹기만 했다. 그리고 의외로 코끼리조개 볶음이 너무 맛있어서 흡입했다. 짬뽕라면은 불향도 내려고 노력을 하였느나 한국처럼 진하진 않았다. 반찬으로 쏨땀을 시켰는데 본토 쏨땀은 처음 먹어봤다. 쏨땀이 생각보다 매운 게 아니구나. 한국에서 먹었을 땐 매웠는데. 특이한 건 삿포로 생맥주 1+1 해피타임이 9시까지로 길었다. 8:30에 들어간 우리는 삿포로 생맥주 3잔씩을 해피타임 안에 먹어치웠고 훌륭한 해산물에 배를 빵빵 두드리며 나왔다. 이날은 야식도 필요 없었다. 그냥 그대로 쉬다 자버렸다.







시내 관광을 끝내고 마지막 날은 리조트에서 수영이나 하고 놀기로 했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긴 다음, 리조트 2시 체크인까지 뭘할까 고민하다 원숭이 섬에 가보기로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이기에 재밌을 것 같았고, 섬 경치도 좋아보였다. 택시를 타고 시내에서 2-30분쯤 가니 원숭이섬에 들어가는 배 선착장이 있었다. 택시 아저씨가 먼저 몇 시에 나올 건지 묻더니 나올 때 카톡을 해달라고, 태우러 온다고 하였다. 2시간쯤 놀 걸 생각하고 과자 한 봉지를 사서 배를 타고 원숭이 섬에 입장하자마자 한 마리가 입구까지 달려나왔다. 남편이 안녕 손을 흔들었는데 급발진해서 달려들어서 바로 막대기부터 찾았다. 이놈들. 남편 건드리기만 해봐라. 내가 때려주겠다. 과자를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오던 놈들이 막대기가 있으니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교토에서 사슴한테 먹이를 줄 때도 꼭 외딴 곳에서 혼자 못 얻어먹고 있는 아기한테만 먹이를 주곤 하더니 원숭이한테도 그랬다. 과자를 꼬옥 아끼고 있다가 잘 못 얻어먹는 아이들에게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좀 겁이 많아서 직접 먹이를 못줬고 남편이 주고 난 후기는, 원숭이 쪼그만 손바닥이 꼭 애기 손 같았다는 거였다.
원숭이섬이 하바나 앞보다 오히려 물이 깨끗해서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모아나에 나오는 바닷물 같았다.

섬에서 나온 우리는 남편이 먹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게 요리를 먹으러 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레드 크랩이라는 가게였는데, 머드크랩을 요리하는 집이었다. 가게를 보니 까마우 머드크랩이라는 종을 요리한다는데, 일반 머드크랩과는 다르게 살이 많고 달다고 하였다. 블랙 페퍼 크랩, 버터갈릭 타이거새우, 계란볶음밥에 조개모닝글로리볶음, 타이거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크랩을 시키면 직접 고르게 해주는데 무게가 7-800그램쯤 된다.







블랙 페퍼 소스가 너무 맛있고 게도 괜찮고 새우도 탱글해서 진짜 흡입했다. 완전 싹싹 긁어먹었다. 여긴 부모님 모시고 가도 될 정도의 퀄리티가 나왔다.
여기까지 하고 다이아몬드베이 리조트로 향했다. 하루는 리조트에서 휴양해야지 싶었던 우리가 정말 딱 하루 예약한 리조트였다. 4시쯤 도착하니 수영장 물이 이미 차가워서 뭘 할 순 없었고, 도착해서 짐을 푼 다음 작은
해변가로 향했다.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해변을 보니 뭔가 작은 것들이 꿈틀거렸다. 바다 게였다. 크기도 좀 컸다. 귀여운 친구들이 해변에 구멍을 파놓고 들어가있가가 우리가 바다로 나가니까 누가 없다 싶었는지 열심히 밖에 나와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게 너무 귀여워서 하염없이 보다가, 자세히 보니 백사장 색깔과 똑같은 엄청 쪼그만 게들이 기어다니는 게 보였다. 걔네는 진짜 조그만 구멍만 파고, 모래 색깔이니까 건드리면 죽은 척 모래인 척 위장하는 게 웃겨서 몇 번 건드려도 봤다. 그렇게 게를 바라보고 놀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갔다. 바닷물이 해안가로 밀려들어왔고, 게들이 바다로 첨벙첨벙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보니 해가 떨어졌고 리조트 내 식당으로 향했다.




스프링롤, 코코넛카레, 햄버거에 타이거 생맥주를 마셨다. 리조트라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음식이 기대 이상으로 다 맛있었다. 왜 다들 나트랑 오면 리조트로 오는지 알겠다. 경치 좋고 수영장 있고 스파 있고 음식도 맛있고 없는 거 없이 다 있는 리조트에서 며칠 묵으면 없는 피로도 씻길 것 같았다.
숙소에서 2차하자 해놓고 내가 꿀잠에 들어버려서 못했다.
리조트에서의 이틀차, 수영을 꼭 하고 싶었던 우리는 레이트 체크아웃을 외쳤다. 18시까지 노는 데에 5만원을 더 지불하고 수영장에서 노는데 비도 좀 오고 영 날씨가 안 도와줬다. 12시에 와서 음료도 한 잔 마시고 1시 반쯤 되니 해가 쫙 비치는 게 드디어 놀 타임이 되었다.

수영을 하다 어깨가 너무 뜨거워서(이미 어제 좀 타버린 어깨) 물에 푹 들어가 헤엄을 엄청 쳤다. 숨찰 만큼 발버둥을 치고 “우리 이래가지고 검도 다시 어떻게함ㅋㅋㅋㅋ” 하며 쉬고 있자니 나의 수영 메이트가 말했다. “라면 먹을래?” 한국인에게 수영장에서의 라면은 그야말로 소울 푸드 아닌가. 미리 사놓은 컵라면에 물을 부어 가져오는 그의 자태가 위풍당당했다. 한 사바리 꿀꺽, 맥주 한 캔 홀짝하고 나니 다시 수영할 힘이 생겼다. 또 첨벙첨벙. 쉬다 수영하다 4시간 정도 하다보니 물에 들어가도 추운 정도의 날씨가 되었다. 저녁이 왔다. 수영을 남편은 오늘 물에 뜨기 도전을 계속 하였으나 5초 정도 뜨기에 성공하고 아윌비백을 외치며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수영으로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숙소 정리를 하니 곧 체크아웃할 시간이 다가왔다. 18시 체크아웃을 하고 식당에서 어제 먹었던 존맛탱 햄버거 한 번 더 먹자 하고 체크아웃을 하러 갔는데 로비로 가보니 번쩍번쩍하는 천사 날개 달린 애들이 세상에서 제일 시끄럽게 뽀짝대고 있었다. 뭐지 했는데 18시부터 깜짝 공연과 함께 다과를 나누는 시간이 있다며 같이 즐기라고 했다. 봤더니 크리스마스가 다 되어간다고 아이들이 캐롤을 부르고 춤을 추며 공연을 하는 것이었다. 애들이 다 베트남아이돌 나가려고 하나 긴장은 1도 없고 활짝 웃으면서 임했다. 보고 나니 다과를 줬는데 스프링롤 안에 있는 새우 및 야채를 예쁘게 일본식 스푼에 담아놓은 요리와 진저 쿠키, 과일 타르트, 슈크림과 과일로 눈사람, 루돌프, 산타모자 등을 만들어놓은 것, 녹인 초코 음료, 커피, 레몬 우롱차 등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차피 햄버거를 먹을 예정인지라 간단히 한 조각씩 먹는데 애기들이 공연이 끝나고 배가 고팠는지 줄을 선 중간중간 들어와 과자를 집어가기 시작했다. 조그만 아이들이 공연 준비하랴 노래하랴 춤추랴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싶어 손에 얹어가려는 아이를 붙잡고 접시를 주며 담아가라고 했더니 시크하게 땡큐를 외치곤 과자를 거의 쓸어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타르트를 더 먹고 싶어 다시 갔더니 하나도 없어서 시무룩해있으니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 한 분이 깔깔 웃었단다. 다들 자기보다 어리고 젊은 사람이 하는 걸 보면 그저 귀여운 건가. 하하.

적당히 먹고 햄버거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 금요일인지라 손님이 전날보단 많았는데 뭔가 코스 요리 같은 걸 시킨 테이블이 두 테이블 정도 있었나보다. 우리 요리가 좀 오래 걸릴 게 예상이 되었던지 어젠 안 줬던 식전 야채빵과 버터를 각각 두 덩이씩 내어줬다. 나는 햄버거 번이 맛있어서 다시 먹으려 한 거라 배가 부르면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참았다. 타이거 생맥주 한 잔을 홀짝이며 기다리고 있자니 어제 우리가 음식을 나눠줬던 치즈고양이가 다시 왔다. 그런데 오늘은 어제 아기 냥이 말고 큰 놈들이 두 마리 더 왔다. 작은 고양이가 뭔가를 먹고 있으니 슬금슬금 다가가서 영역 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조그만 고양이는 구석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 구석으로 몰린 녀석은 쉽사리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한 15-20분 기다렸을까. 드디어 햄버거가 나왔다. 어제와 같이 번은 반짝거렸고 패티는 두툼했으며 계란 후라이도 반숙으로 올라가있었다.


자른 단면을 보면 패티가 굉장히 두껍다. 생맥주 한 모금과 씹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정말 안타깝게도 아직 1/4가 남았는데 배가 불렀다. 남편도 한 개를 다 먹은 터라 배가 부르다고 했다. 이걸 어떡하지 아깝다 하는데 저기 구석진 곳에서 이제 나가도 되나 아닌가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꼬마 치즈가 보였다. 고양이로 태어나서 맨날 이상한 것만 먹지 말고 너도 고기 맛 좀 봐라 하는 마음으로 남은 고기를 다 줘버렸다. 다른 놈들이 못 훔쳐먹게 눈치를 살살 봐가며 구석지에서 냠냠 맛있게도 먹는 꼬마 치즈가 안쓰럽고 귀여웠다.
밥을 다 먹고 그랩을 불러 공항까지 20분 정도 걸려 도착했는데, 두둥. 너무 일찍 도착했다. 공항이 좀 클 줄 알고 체크인해서 놀 생각이었는데 일단 공항이 작아서 앉아 있을 곳도 부족하고, 체크인 게이트도 작고 3시간 전에나 열리는데다 할 것도 없다. 근처에 바다가 있길래 걸어서 나가볼까 했으나 편도 30분 거리이다. 택시를 다시 타고 나갈까 했는데 바다 근처도 다 문을 10시면 닫아서 나가는 의미가 없었다. 그냥 공항 출발 게이트 말고 도착 게이트에는 사람이 없어서 거기서 콩카페나 먹으면서 비행기를 기다렸다.
누워서 일기쓰고 노닥거리다보니 비행기를 탔고, 그렇게 서울에 무사 도착했다.
인생 첫 휴양 여행, 생각보다 막 휴식만 하지는 않았느나 그래도 배낭 여행보단 여유롭고 심심한 여행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여유로움은 새로웠고 심심한 시간이 약간은 불안했다. 내가 얼마나 여유를 못 즐기는지 알게 되었다. 이번 여행에서 이걸 최대한 누려보려고 노력했으며, 억지로라도 이렇게 시간을 내서 심심함을 나에게 선사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음에 또 간다면 꼭 리조트를 예약해서 수영을 3일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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